편집국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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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1월 한일 국교수립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귀국인사차 박정희 의장을 예방했다. 1962.11.13.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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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우), 노태우(좌) 전 대통령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12ㆍ12와 관련한 선고공판을 위해 법정에 출두했다. 1996.08.26.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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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 1997년 12월 13일 이인제(국민신당), 이회창(한나라당), 김대중(국민회의) 등 대통령 후보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고, 3당 대통령 후보들은 IMF 경제위기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초당적 입장에서 협력키로 의견을 모았다. 1997.12.13.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 '마음 속의 2인자' 이인제' vs '투쟁 끝 쟁취' 이회창
김영삼 대통령은 권력을 나눌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신 영원한 라이벌인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해 이인제를 앞세운 '세대교체론'을 공언했다. 그러나 임기 3년차에 지방선거 참패로 권력이 진짜로 흔들리자 "임기가 2년5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후계 구도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후계자 논의자체를 원천봉쇄했다.
특정한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1997년 봄 한보 사태, 아들 김현철의 비리가 터지며 권력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이른바 '9룡의 쟁투'가 시작되며 여당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결국 대선 후보 자리를 쟁취한 '대쪽' 이회창에게 막판까지 이인제를 앞세우며 버티다가 '화형식'까지 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며 당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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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 및 원내대표를 조찬에 초대했다. 당시 초대된 인사들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한화갑 민주당 대표, 정진석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등이다. 2006.10.10.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 김대중과 노무현…공평한 경쟁 시스템 중시
여당의 지리멸렬을 틈타 'DJP 연합', 김종필과 손을 잡고 대권을 얻은 김대중 대통령은 시스템을 통한 후계자 옹립을 선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는 같은 조건에서 경쟁시켜 나로부터가 아닌 국민 지지를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심복인 김중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인제를 중용했다. 동시에 노무현, 정동영, 추미애, 고건, 정몽준, 박근혜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뚜렷한 후계자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최초로 '차기 후보 선출 전 당 총재직 이양'을 걸고 '국민경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처음 해보는 '대선후보 선출 국민경선'은 폭발적 흥행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노무현 대통령도 "차세대를 내가 만들 생각이 없다. 되지도 않는다. 당 공식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공인된 과정을 기준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며 김두관, 강금실, 김근태, 정동영, 이해찬, 유시민, 정세균, 추미애 등 수많은 잠룡들이 성장할 수 있는 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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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청와대 단독 오찬회동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2.09.02.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불화…이명박-박근혜
당내 경선에서 겨우 박근혜를 이긴 뒤, 약체 여당 후보(정동영)를 누르고 손쉽게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대통령은 절대 박근혜와 권력을 나눌 마음이 없었다. 박근혜 역시 '국민도 속이고 나도 속인' 이 대통령과 함께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대통령은 김태호, 오세훈, 김문수, 원희룡, 임태희, 정두언, 남경필 등을 통한 '세대교체론'으로 라이벌 박근혜를 견재했다.
박근혜 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를 향해 전과14범, 위장전입, BBK 실소유주 등으로 맹공을 퍼부으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명박은 집권 후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이른바 친박 학살을 자행했다. 살아 돌아온 박근혜 진영은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며 이명박과의 선을 명확히 그었다.
이명박·박근혜의 권력을 둘러싼 갈등은 2009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최고조에 달했다. 이명박이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 박근혜는 "집 안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강도로 돌변하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맞받았다.
권력투쟁에서 '강도(强盜)'는 약과다. 영화 '사도'에서 처럼 존비속살인(尊卑屬殺人)도 비일비재하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을 저술하면서 군주에게 꼭 필요한 덕목 2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냉혹할 정도로 인색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로 권력을 남과 나누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