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사진=빌리버튼
“왜 나는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이다.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하고, 다이어트 결심을 작심삼일로 끝내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 이들의 반복되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단순한 성격이나 의지 부족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센딜 멀레이너선과 프린스턴대 교수 엘다 샤퍼는 저서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결핍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밝혀낸다.
사람은 때때로 불합리한 선택을 한다. 가난한 사람이 높은 이자를 감수하고 돈을 빌리거나, 마감이 임박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미루는 모습은 일견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선택이 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이 아닌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결핍은 인간의 인지적 자원을 심각하게 제한하며, 사람들의 사고를 단기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만든다.
가령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다음 달 카드값’에 온 신경을 쏟느라 장기적인 재정 관리에는 무관심해지기 쉽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결핍이 인간의 주의력을 특정 문제에 집중시키면서도 다른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게 만드는 심리적 작용 때문이다.
결핍의 영향력은 집중력 향상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마감이 촉박할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제한된 자원이 오히려 효율적인 문제 해결을 유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결핍이 심화되면 다른 필수적인 요소를 놓치게 되고, 이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당장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보험을 해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결핍의 가장 무서운 점은 스스로를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단기적으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이자의 대출을 선택하고, 그로 인해 더욱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받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이렇게 결핍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결핍을 낳으며,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결핍이 만든 덫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연구자들은 단순히 자원을 더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결핍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도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노점상들의 빚을 대신 갚아줬음에도 불구하고 1년 후 다시 같은 수준의 빚을 지고 있었다. 이는 결핍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대안으로 저자들은 ‘인지적 여유’를 제공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정부나 기업이 정책을 설계할 때 결핍으로 인한 인지적 부담을 줄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경제적으로 장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거나, 일정이 빡빡한 사람들을 위한 효율적인 일정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식이 있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는 자신이 결핍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지를 자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는 결핍을 단순한 부족함이 아닌,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바라본다.
리처드 탈러, 대니얼 카너먼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극찬한 이 책은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결핍이 우리의 선택과 미래를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분석한다. 결핍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