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
2024년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표 (자료=방통위)
“그냥 재미로 했어요.” 메타버스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한 중학생은 사이버폭력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장난’은 누군가에겐 깊은 상처로 남았다.
202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4명, 성인 10명 중 1명이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는, 디지털 공간이 더 이상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닌 또 하나의 ‘폭력 현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3월 28일 발표한 ‘2024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의 42.7%, 성인의 13.5%가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1.9%p, 5.5%p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성인의 증가 폭이 두드러졌으며, 20~30대에서 가해·피해 모두 경험 비율이 높아진 점이 눈에 띈다.
청소년은 ‘피해만 경험했다’는 비율이 20.3%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가해와 피해를 모두 경험했다’는 응답이 16.7%, ‘가해만 했다’는 비율이 5.7%였다. 성인은 각각 8.6%, 1.6%, 3.3%로 나타났다. 남성, 중학생, 20대에서 사이버폭력 경험 비율이 높았으며, 특히 중학생의 가해 경험은 27.2%에 달했다.
가장 흔한 사이버폭력 유형은 언어폭력이었다. 청소년의 경우 욕설(44.8%)과 희롱·조롱(각각 19.6%)이, 성인은 희롱(35.1%), 조롱(28.5%), 욕설(21.5%) 순으로 나타났다. 문자나 인스턴트 메시지를 통한 사이버폭력이 가장 많았지만, 가상융합세계(메타버스) 내 폭력도 급증했다.
청소년의 경우 메타버스에서의 피해 경험률이 2.4%에서 18.5%로, 가해 경험은 1.9%에서 16.2%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이버폭력의 주요 동기는 ‘보복’이었으며, 청소년과 성인 모두 40% 안팎의 응답자가 상대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이버폭력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특히 청소년은 ‘재미나 장난’(18.2%)이나 ‘이유 없음’(20.0%)이라는 응답도 많아, 사이버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리적 영향도 적지 않다. 피해 청소년의 70.1%가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응답한 반면, 30.0%는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떠올렸고, 18.0%는 우울, 불안 및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일부는 무기력(13.5%)이나 자살·자해 충동(5.6%)까지 느꼈다고 한다.
디지털 혐오 표현과 성범죄에 대한 노출도 확대되고 있다. 청소년의 18.6%, 성인의 16.4%는 디지털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으며, 청소년 16.1%, 성인 17.4%는 디지털 성범죄를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불법 촬영물, 지인 능욕, 몸캠 피해 등이 대표 사례다.
방통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메타버스 내 실습형 교육 확대, 디지털 윤리 문화 캠페인, 사이버폭력 대응 콘텐츠 보급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여성가족부·교육부·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공동 대응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디지털 혐오와 사이버 명예훼손이 일상처럼 퍼지고 있는 만큼, 올바른 디지털 문화 확산과 피해 예방에 힘쓰겠다”고 말했다.